컴퓨터학과 진학을 앞 둔 친구들에게

이제 막 수능이 끝났으니, 재미나 성적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먹고 살자는 의미에서 전격적인 공부를 시작하는 무리가 또 생겨나기 시작한다. 취업을 위한 지식, 바로 전공 공부다.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공부하게 된다면 크게는 3가지 경우다. 우연히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접한 기회로 이미 남보다 많이 알거나, 평생 진로 고민이 없었던 터라 성적에 맞춰 대학에 붙고보니 컴퓨터학과라거나, 직업 이미지가 마음에 들어서 아무런 구체적 정보 없이 호감에 의존해 일생의 기로를 선택하거나.

마지막 부류가 가장 곤란하긴 한데 그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아무튼 누가 됐건 간에 대학 내에선 별 차이가 없다. 결과는 졸업하고나서 나타난다. 그러니 이것도 큰 문제일 수 밖에. 또 4년간 개인의 진로적성을 무시하고 전체집단의 공부를 모두 똑같이 하는 고교생활 재탕이 반복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당장 닥치지 않기에 모르는 척해도 되는 상황일 뿐, 실제로는 이미 알고 있다. 미션을 달성하면서 트로피를 얻으려는 것도 아니고, 지식을 단지 깨우치기 위한 것도 아니고, 결국 직장에서 꺼내쓰기 위해 지식을 쌓는 것이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안다. 배터리 충전과도 같다. 간직할 지식이 아니라 꺼내 쓸 공부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순수과학을 택했겠지.

그러니 우리는 학생인 걸 상정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커리큘럼을 머리에 넣어주세요. 중간 사이즈요. 아, 가지고 갈게요.” 이렇듯 커피 사듯이 행동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배운 걸로 실무를 할 것이고, 이걸로 월세도 낼 것이다. 심각하단 말이다.

그런데 심지어 지금 배운 건 다음 세대쯤에는 필요도 없는 지식이 된다. 하다못해 원시인류가 동굴에 남긴 낙서조차도 가치가 있는데 우리 분야의 지식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가 배우는 건 수학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건 비단 월급쟁이 프로그래머가 될 사람에게만 하는 얘기가 아니다. 만약 컴퓨터학 박사를 따고, 심지어 교수가 되더라도 완전히 마찬가지다. 당신의 지식은 딱 30년짜리다. 그러니 적어도 우리 전산쟁이들은 공부를 하려면 몇가지를 알고 시작해야 한다.

서론이 길었던 건 당신이 위험에 처했다는 걸 알게 해주기 위함이고 위험은 알면 대처할 수 있다. 컴퓨터학은 인생에서 꽤나 위험한 전공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처세에 달렸다. 평생 하늘천 땅지 하다가 하늘도 땅도 모른채 죽는 선비도 있고, 똑같은 글월로 관직에 올라 천지를 호령하는 수도 있다. 컴퓨터학이 딱 그 모양새다. 이제 바로 이에 관한 얘기를 할 것이다.

우선 생각보다 흔하고 꽤 높은 비율인 첫번째 친구들, 어려서부터 코딩을 이미 경험한 친구들은 사실상 졸업을 하고 직장을 갖고 대리쯤 되기까지 아무의 도움도 필요없다. 스스로 알아서 길을 잘 찾아간다. 너무도 확신에 차있다는 게 문제일 뿐, 철로에 선 기차처럼 방향에 흔들림이 없다.

그런데 이 과한 자신감은 아주 약한 독이라서 시간이 아주 한참 지난 뒤 굉장히 미래에 슬며시 올라온다. “아니 내가 늘 1등이었는데 필드에 나왔더니 중간치기도 못 하잖아!”. 게다가 오래 묵은 슬럼프는 그만큼 크게 발목을 잡는다. 여전히 전혀 뒤처진 건 없으니 포기할 순 없고, 그렇다고 마냥 앞서 있지도 않아 노력할 의욕도 없다. 과거에 갇힌 평범이는 이제 표류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상위에 서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압도적인 상위는 당신의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천재들이 많다. 그저 평범한 우리들의 일이라면 상위를 말하는 게 좀 다른 의미다. 직관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직장이라는 곳에서는 나보다 잘난 놈이랑 나만큼은 잘난 놈의 두 종류가 있다. 막상 우리는 까짓거 후자만 되어도 충분하다. 게다가 지금 당신은 아직 학생이다. 직장인이 되어 후회하기 전에 할 수 있는 게 너무나도 많다. 우리는 방금 미래를 보고 온 것이고 이제 과거를 바꾸기만 하면 된다.

자 그럼 이제부터 기본기를 갖춰라. 뻔한 소리 같지만 학생들은 기본기가 무엇인지 자체를 모른다. 그러니 이건 전혀 뻔한 것이 아니다. 기본기가 뭔지 아는 것부터가 이미 기본 이상이니까. 이때 선배들 말에는 휘둘리지 마라. 아는척 해봐야 그들도 아직 고작 취준생이다.

여기서 기본기는 공학적 지식보다는 이학적 지식을 쌓으라는 뜻이다. 새로운 멋드러진 언어를 익힐 시간에 컴퓨터 구조를 배워두면 더 좋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분야의 30년짜리 지식은 인류의 어떤 지식보다 하찮다. 어차피 배울 거면 가치가 더 큰 걸 배우라는 말이다. 당신이 지금 2달 동안 배울 멋드러진 새 언어는 실무자가 되면 사실 3일이면 다 배운다. 그런데 적어도 AX 레지스터의 쓰임은 백년이 넘어도 유지되는 지식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요즘은 어셈블리어로 10줄 남짓, 반나절이면 이해할 수 있는 함수 호출과 반환 과정만 알아도 이미 희귀생명체다. 지금 컴퓨터학과는 휘발성 지식을 위주로 배워서 졸업하는 곳이다.

당신이 조기 학습자였다면 코딩은 남보다 감각적일 것이고, 대학 시절에 ‘영속적인 지식’ 위주로 기본기를 쌓아서 나왔다면 날고 기는 천재는 아닐지라도 동료들의 평가 속에서 항시 상위에 서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 분야는 의외로 안전한 곳이라서 어지간하면 낙오로 쓰러지지 않는다.

그리고 두번째 친구들, 고민이 많지 않던 마음 편한 친구들은 사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십대 내내 진로에 고민 없던 친구들은 대학 때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성적 맞춰 진학하고 성적 맞춰 졸업하고 성적 맞춰 취업하면 너무 대충인것 아니냐 싶겠지만 이것도 사람 사는 방식이다. 앞길에 고심하지 않는 사람은 되돌아갈 후회도 적게한다. 일에 열정이 넘쳐서 하는 사람이 있으면 뭉근하게 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금방 끓다 때려치고 도망갔을 때의 그 아까운 시간이 문제인거지, 고작 직장인이 일을 즐기지 않는다고 문제일 리는 없다. 원래 생업은 그런 것이다.

적어도 이과 공부를 했으면 정규분포는 인정을 해야지 않겠나. 이렇게 중간에 있는 사람이 많아야 세상이 돌아간다. 이 사람들은 배운만큼은 하고 그만큼씩 자리를 지킨다. 이쪽 분야가 유난히 성향에 대한 선민의식이 강한 편인데, 그런 분위기에 비해 사실은 덕업이 일치하는 쪽이 더 소수고 훨씬 많은 생업 프로그래머들이 업계를 꾸려간다. 정작 더 중요한 재능은 이탈하지 않고 꾸준히 가는 것, 직장인의 기본 재능이 더 귀하다. 그래서 온 김에 그냥 여기서 일할 뿐인, 일반 직장인 친구들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의외로 못 할 것만 못 할 뿐, 할 걸 못 해내는 일은 별로 없다.

가장 문제는 이쪽의 성향이 아닌데 업계의 좋은 면만 보고 진학한 마지막 친구들이다. 이들은 현실을 느끼고나서 단지 실망만 하는 게 아니다. 대학 공부 4년, 멋 모르고 취업한 2~3년 모두 날아가니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계속 나아가자니 성향 타고난 친구들만큼 재미도 안 나고, 후회 반 적응 반 해서 어중간히 버티게 된다. 누구는 기술 영업이 되고, 누구는 갑자기 PMO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운이 좋은 친구는 대기업의 보고서쟁이가 되기도 하지만 이건 아주 극소수다. 사실 절대다수는 도피책도 못 찾아서 사내 알력싸움에나 관심을 가지며 야망찾기에 몰입하는게 수순이다.

시큼한 레몬은 신 걸 좋아하는 사람에겐 맛있는 열매지만 입맛에 안 맞는 사람에겐 마로니에 열매나 다를 바 없다. 딸 필요도 없는 열매다. 그런데 그걸 나무를 심기 전에 알면 오죽 좋을까. 그래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진로를 정하겠다면 그 전에 자신을 좀 더 관찰해 보기를 권한다. 성향이 타고난 사람이나 성향이 전혀 없는 사람이면 이보다 가성비 좋은 직업이 있겠냐마는 성향이 반대인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안 맞는게 또 이쪽 직업이다.

이미 진학을 했다고 걱정할 것이 없다. 지금의 컴퓨터학은 공학이고 융합과학이다. 대학 4년이면 시간은 매우 길고 전공 연관해서 가질 수 있는 다른 직업이 수십 수백이다. 전과를 하든 복수전공을 하든 방법도 많다.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의 성향을 알고자하는 의지가 있느냐다. 졸업하기 전까지 IT 업계의 밝은 모습만 보면서 자신의 성향을 애써 부정하는 친구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 가장 큰 함정일 뿐이다. 성향이 안 맞아도 끝까지 가보려는 친구들이 이쪽 분야에는 유난히도 참 많다.

그런데 대학 시절에 슬금 들여다보는 업계는 SNS를 스크롤하는 것과 별반 다를게 없다. 필터 먹이고 이쁜 모습이거나 꼰지르는 아주 엉망의 모습들만 보이지 어중간히 좋은 것과 어중간히 나쁜 현실 세계는 잘 표현되지 않는다. 젊어보이는 업계, 욕심나는 업계보다 정작 중요한 건 나와 맞는 업계다. 나의 이상을 쫓느라 나의 일상을 속이는 건 바보짓이다.

한 가지 팁을 주자면 돈이 좀 들겠지만 부트캠프 학원에 다녀봐라. 학원의 목적으로는 형편없는 곳이지만 대학생의 삶에서라면 손해볼 것은 없는 곳이고 본인의 적성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코딩 이외에 문서 작성이나 사람들 만나는 게 더 재밌었다면 전공 공부보다는 영어 공부라든지 다른 걸 더 열심히 해보는 게 좋다. 그럼 10년 뒤에 날 원망할 일은 절대 없을 거다. 반면에 컴퓨터학이 체질인 친구들은 “내 적성을 확인해볼까”하는 생각을 별로 갖지 않는다. 스스로 너무 확실히 알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적성이라는게 있다는 사실조차도 그닥 의식하지 않는 지경이니까.

이제 곧 컴퓨터학과에 입학을 할 여러분들, 우리 친구들은 어느 성향의 전공생일까. 지금까지의 얘기들은 미래를 단정지으려고 한 말들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고 그 범위는 어디까지고, 내가 할 수 없는 건 또 무엇이고, 어느 것이 가성비가 가장 좋은 선택인지’ 먼저 생각해보자는 소리다.

어차피 지금은 시간이 많으니까 대학생활 훌쩍 건너뛰어서 직장생활에다 은퇴까지도 상상해보면 어떤가. 그 다음에 어떤 선택을 해서 어떤 방향으로 가든, 컴퓨터학과에서 나아가고 있는 친구들에게 또 나름의 다른 조언은 얼마든지 더 해줄 것이다.